시편 44편 우리는 귀로 들었습니다.

시편 44편 우리는 귀로 들었습니다.

톨레 레지/시편

2012-01-22 00:18:26


이 시편 역시 앞의 두 시편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앞의 두 시편이 개인 시인의 차원에서 쓰여졌다면 시편 44편은 공동체 차원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시인이 공동체의 지도자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44편에서 시인은 공동체의 지도자로서 공동체를 대신하여 기도하기 시작하는데, 먼저 하나님께서 그의 조상들의 시대, 즉 옛날에 하신 일을 언급합니다. 이것은 아마도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의 역사를 가리키는 것 같고, 그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전적인 도우심과 이스라엘의 승리를 회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9절부터는 기도의 내용이 역전되어 현재의 패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부끄러운 일에 버려 두시고 우리를 양같이 넘겨 주어 우리 원수에게 잡아 먹히게 하시고 우리를 여러 민족 중에 흩으셨도다 그런데 시인은 이 모든 일이 일어났으나 우리가 주님을 잊지 않고 주님의 언약을 어기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지금 그들이 처한 상황은 여호와께서 우리를 사냥개의 소굴에 몰아넣어 사망의 그늘로 덮으신 것 같으나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버리거나 이방 신들을 섬기는 죄를 지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시인은 그들의 고난이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였고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이 상황이 어떤지 모르겠어 앞의 두 시편에서 시인의 상황은 원수들의 압제와 그들로부터의 비웃음과 비방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공동체의 패배와 굴욕은 공동체의 죄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을 위한 모욕과 고난임을 결백히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시인은 담대히 “주여 일어나소서 왜 주무시나이까? 이제 일어나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마옵소서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고 우리의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 영혼은 흙 속에 묻히고 육신은 땅에 붙은 채 도와줄 자가 없는 상황에서 시인은 하나님이 일어나시어 주의 인자하심으로 도우시고 구원하시기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도울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시편 42편, 43편, 44편은 모두 의로운 고난, 즉 순진하게 무명으로 받는 고난에 직면한 시인 개인과 시인이 속한 공동체가 드리는 기도인 것 같다. 그러므로 바울은 22절을 그리스도인들이 당면한 모호한 고난으로 인용하고,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하는 놀라운 승리의 확신을 선포한 것이 아닙니까?